내 딴에는 아둥바둥 살고 있는데 누군가의 기대에는 못 미쳤나보다.
조금 서러웠다. 어렸을 적부터 남들보다 많이 느렸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여전한데,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기다려줄 여유가 없는 사람들.
예배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Arvo Pärt의 'Credo'를 들었다.
몇달 전에 사서 열광적으로 들었던 Hélène Grimaud의 DG 데뷔 앨범 [Credo]의 마지막 곡.
앨범의 구성이 굉장히 특이하다.
앨범 커버 사진부터 곡의 흐름까지 하나의 색을 띠고 있다.
창백한 에메랄드 빛 호수에 피아노 소리가 물방울처럼 떨어진다.
Corigliano의 'Fantasia', Beethoven의 'The Tempest', 'Choral Fantasy'를 거쳐 Pärt의 'Credo'까지.
모든 것이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다.
Tempest에서 Choral Fantasy를 거쳐 Credo까지 넘어가는 순간순간이 정말 소름 끼칠 정도.
'Credo'는 에스토니아 출신 현대음악가 Arvo Pärt (1935-)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로 Chorus가 시작되고, Bach의 평균율 1번이 피아노로 연주된다. 이때까지는 아름답게 들을 수 있지만, 이내 혼돈이 찾아오며 무조성으로 흘러간다.
차분한 합창을 시끄러운 관악기의 파열음으로 두동강 내는 것을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정말 혼돈 그 자체. 고통에 떨고 괴로워하는 성악 파트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 시험에 들고 괴로워하는 한 영혼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마침내, 모든 것이 정리되고 평균율 1번이 다시 연주되기 시작되면서 평안이 찾아온다. 평안이라기보단 모든 것을 이겨내고 천국으로 승천하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다.
듣고 또 들어도, 평균율 1번이 다시 시작될 때에는 눈물이 흐른다. 나를 집어삼킬 듯한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느낌. 감정을 억지로 참아내지 않는다면 펑펑 울수도 있을 것 같다.
가사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놀라울 정도로. 다만 음악이 모든 것을 표현해준다.
[Credo] Credo in Jesum Christum Audivistis dictum oculum pro oculo dentem pro dente Autem ego vobis dicl: non esse resistendum injuriae. Credo 번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노라. 너희는 들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복음 5:38-39)] 나는 믿노라. |